본문말씀 : 사무엘상 28장 18-19절 말씀
“네가 야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야훼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야훼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사무엘상하]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을 하게 됩니다. 타락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기 위해 선택받은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하나님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한 결과로 이방민족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왕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나서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사울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에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보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음 왕으로 삼으십니다. 막상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무엘 上은 다윗이 왕으로 준비하는 기간이요, 사무엘 下는 왕으로서의 다윗의 행적입니다. 결국 사무엘上下는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여주는 책인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망명생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자신을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을 피해 끊임없이 도망을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초기에는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일시적으로 피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사울의 추격이 집요해지자 그일라에서 십(Ziph) 황무지까지 피해 다니는데, 그 기간 중에 자신의 추종세력이 모여들게 되고, 백성들의 신망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자, 다윗은 적국이었던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기스 왕의 신임을 얻어 블레셋 땅 가드에서 1년 4개월 정도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것보다 블레셋으로 망명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울도 다윗 쫒기를 그만두었으니, 다윗의 신상이 보다 안전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던 다윗이었으나, 이번에는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지면 생기는 일
이 망명기간 중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육신적으로는 안전했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다윗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이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해서 이벡이라는 곳에 집결하게 됩니다. 결국 길보아 산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대패하고, 사울과 그의 세 아들도 전사하게 되는 아주 큰 전투였습니다.
다윗이 자기 동족과의 전쟁에 상대방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이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다윗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기스 왕을 따라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대로 가게 되면, 자기 백성들과 맞서 싸워 백성을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기름부으셨는데, 적국의 장군이 되어, 이스라엘과 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고, 영원히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다윗의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아, 다윗을 왕으로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려고 했던 하나님의 섭리도 자칫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진퇴양난에 처한 다윗
그렇다고 이 전투에 참가해 줄 것을 요구한 아기스왕의 요청을 뿌리칠 수 있는 명분도 없었습니다. 그가 아기스의 명령을 거부하고 전쟁참여를 반대한다면, 그동안 거짓으로 얻었던 신임에 의심을 받게 되면서, 배신자로 잡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고 어정쩡하게 아기스왕의 뒤를 따라 전장에 나서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요즘말로 멘붕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다윗을 건져주시기는 합니다만, 다윗이 일시적인 평안을 얻기 위해 하나님보다 이방 왕을 의지하고 거짓말했던 대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더 암울한 상황의 사울 왕
28장의 1-2절 말씀은 이런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3절 이후에 이어지는 사울의 이야기는 더 암울합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죽은 이후 영적 혼란과 외세 침략의 위기에 처한 사울이, 답답한 마음에 신접한 여자를 찾아가,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내용입니다. 블레셋의 총공세로 위기에 빠진 사울이 하나님께 기도해 봤지만,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불안해진 사울은 변장을 하고 신하들을 데리고 밤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여자를 안심시킨 후에,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신접한 여인을 통하여 땅에서 불려올라온 사무엘의 영에게, 사울이 절하면서 다급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영이 사울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순종의 대가로 이번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을 듣게 됩니다. 사울은 절망가운데 탈진하여 쓰러지게 됩니다. 여기서, 신접한 여인을 통해 불려 올려진 것은 사무엘의 영을 가장한 귀신입니다. 귀신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 발람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셨고, 때로는 나귀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99% 순종과 100% 순종
여러분, 그런데 겸손하고 준수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울 왕이, 어쩌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게 되었을까요? 끝까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더라면, 이렇게 하나님의 버림을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그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선지자의 말에 회개하기는커녕, 백성에게 핑계를 대며 변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왕국입니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집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순종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에 맞는 부분만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사울도 아말렉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말렉을 진멸하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99%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1%를 남겨 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온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내가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고 교만이요 불신앙입니다. 내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말하자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한 순종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결국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거세지면, 그 집은 맥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 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든 권세를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위임받은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곧 위임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반대하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로마서 13장 1-2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곧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십자가 고난을 받으심으로 순종을 배우시고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슴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특권을 버리고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그렇게 낮추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런 순종의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의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내 힘으로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곧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핵심은 순종에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형통의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왕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하셨다면, 순종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뜻을 정하기를 원하십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 1:8) 결단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리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따라서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날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통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 생각 내 경험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못해. 나는 믿음이 없어. 아닙니다. 중간에 쓰러져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이 일으켜주십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주님을 만나고 순종하기로 결단하신 여러분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시며(히12:2) 승리하시기 바랍니다.